[노동자의 눈으로 세상보기] 자리가 바뀌었다고 노동자의 눈까지 바뀔 수는 없다!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보기]
자리가 바뀌었다고 노동자의 눈까지 바뀔 수는 없다!
최근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둘러싸고 현장의 논쟁이 뜨겁다. 지도부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총연맹 위원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르면 시야가 넓어지고 고민의 폭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이를 두둔한다. 자리가 높아지면 더 멀리, 더 넓게 내다봐야 한다는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지도자에게 던져야 할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얼마나 넓게 보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이다. 그 시선이 정권과 자본의 계산법인지, 아니면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의 처절한 현실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지난 2020년 7월, 양경수 당시 경기지역본부장이 김명환 지도부의 사회적 대화 강행을 비판하며 남긴 말을 다시 돌아본다. 당시 그는 “사회적 대화가 의미를 가지려면 현장의 강력한 투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나아가 “교섭과 합의안에 직을 걸지 말고 민주노총의 단결과 투쟁에 직을 걸어달라”고 호소하며, 조합원이 바라는 지도자는 권력자와 마주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싸우는 사람이라고 못 박았다. 당시 그의 눈에 비친 사회적 대화는 조직의 단결을 깨뜨리고 현장의 투쟁을 멈추게 만드는 위태로운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지도부는 바로 그 과거의 외침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앉은 자리가 바뀌었다고 해서 노동조합의 근본 원칙까지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는 없다. 높은 자리에 앉을수록 정부의 핑계나 기업의 경영 논리가 더 자주 들릴 수는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부가 자본과 정권의 관리자적 시각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결코 ‘넓어진 안목’이 아니다. 현장 노동자의 계급적 분노와 절박함을 잊어버린 뼈아픈 후퇴일 뿐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AI와 디지털 첨단 기술이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거대한 산업전환이 시작되었다고 연일 요란하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치솟는 물가 속에서 실질임금은 깎여 나가고, 플랫폼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현장에서 다치고 쓰러진다. 기술 혁신의 그늘 뒤에서 노동자를 쥐어짜 이윤을 챙기는 자본의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화려한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고 해서 노동자의 생존권이 저절로 지켜진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정중한 말 몇 마디와 그럴듯한 기념사진 한 장은 현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단 한 치도 바꾸지 못한다. 현장의 살아있는 투쟁이 받쳐주지 않는 사회적 대화는 결국 정권과 자본의 입맛에 맞춘 정책을 정당화해 주는 들러리로 끝난다. 2020년 당시 양경수 본부장이 남긴 경고, 즉 “위원장이 고민하는 폭과 깊이가 다를 수 있지만 늘 옳은 결론을 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이제 지금의 지도부 스스로를 향해야 마땅하다. 지도부가 마주해야 할 자리는 권력과의 교섭 테이블이 아니라, 오늘도 현장에서 묵묵히 기름때 묻히며 일하는 조합원들의 거친 손끝이다.
자본의 잣대가 아닌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대화라는 환상이 아닌 단결과 투쟁의 길에 조직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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