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네 번째 이야기] 솔직히, 평등수칙 어려워요. '평등 뭘까?' 인터뷰 ② 이백윤 회원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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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네 번째 이야기] 솔직히, 평등수칙 어려워요. '평등 뭘까?' 인터뷰 ② 이백윤 회원
[편집자 주] “평등수칙”은 민주노총, 전국결집 등 각종 조직체계에서 조직내 평등한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성찰하고, 더 나은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고자 제정되었다. 어디까지나 ‘수칙’이기 때문에 구성원에게 각 문항의 이행을 강제할 순 없으나, ‘수칙’의 존재로 인하여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대한 감각을 함께 공유하고, 또 동지와의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한다.
전국결집 평등위원회는 “평등수칙”을 어렵게 느끼거나 혹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동지적 믿음에 기반하여 평등수칙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고, 고민도 함께 나눠보는 시간이다.
두번째 인터뷰는 이백윤 충남결집 회원과 함께했다. 이백윤 동지는 기아차 ‘모닝’을 생산해온 금속노조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장 출신이며, 현재 노동당 대표로 활동 중이다.
평등위원회(이하 평) : 이백윤 동지, 반갑습니다. 전국결집 평등위원회입니다. 총선 이후로 바쁘셨을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백윤 회원(이하 이) : 네 반갑습니다. 충남결집 회원이자, 노동당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백윤 입니다.
평 : 첫번째 질문부터 드릴게요. 동지는 평등이라는게 필요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이 : 어렸을때 아현동에 살았는데 당시 집안이 가난해서 며칠을 굶기도 했어요. 여섯 식구가 사는 집이다보니 화장실 가려고 30분을 기다려야 했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2학년때 서울로 학교를 왔는데 저희집 담벼락 너머로 으리으리한 주택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나오는 친구가 저희 반친구인거에요.
돌이켜보면 평등이라는 단어도 개념도 모르던 나이였는데, “너는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그리고 군대라는 공간에서 무력감을 많이 느꼈어요. 억압, 불평등이 그 집단을 운영하는 매커니즘이 되고, 계급 질서를 합리화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 안에서 변화를 시도했던건- 보통 병장쯤 되면 걸레질을 안 하는데 먼저 했고, 구타행위를 금지했어요. 제가 소속된 집단에서부터 영향을 미치고, 다른 경험을 갖게 하고 싶었죠. 그럼에도 한계를 경험했는데, 군대의 워낙 서열문화, 상명하복이 공고한 공간에서 저 혼자 약간 ‘의미있는 실천’ 정도로 여기는 거에요. “병장님은 역시 학생운동을 하셨다보니 뭔가 다르시네요” 정도? 그걸 보면서 이건 구조를 바꿔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느냐에 따라서 사안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는 거니까요.
세번째로 현장에 있을때 일인데, 당시 국장인 분이 부장을 부를때면 벨을 눌렀대요. 결국 국장의 괴롭힘을 6년을 참다가 지역사회에 폭로를 하셨는데, 그걸 보면서 느꼈던게 계급철폐와 노동해방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결국 권력이 작동하는구나. 그러니까 유사한 상황들이 발생했을때, 차후 조직이 우리 안의 문화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이겠죠.
평 :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에는 문제에 대한 개입도 있지 않을까요?
이 : 맞아요. 단순간에 바뀌진 않더라도 누군가는 평등에 대한 고민을 기억하고 실천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했던 생각이나 판단들이 한번쯤은 주저하게 만드는 계기를 주지 않을까. 한 사람의 의식 구조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요. 예를 들면 페미니즘 운동의 경우에도 여성을 향한 차별과 혐오에 지속적인 저항의 목소리와 문제제기를 통해서 바꾸어 나가신 거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페미니스트 활동가 동지들은 심리적인 에너지 소모가 정말 크겠구나란 생각도 들어요.
평 : 인터뷰 전에 “평등수칙”이 제정된 조직들의 자료를 보내드렸는데,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이 : 노동당의 평등수칙의 경우 ‘왜 이 수칙이 제정되었는가?’에 대한 맥락이 충분히 담기지 않았단 생각이 들어 차후 보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평등’이란 개념이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갖고 배제당하지 않는 권리에 대한 보장”이라는 사실 그 이상으로, 구현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요. 저로서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당 운동을 해오며 지향하는 바가 곧 평등이기 때문에, 그것이 정치적 지향이든, 삶의 지향이든,
모든 면에 있어서의 지향점이 평등이라고 하는 가치로 수렴되는 운동을 하고 있기에 평등수칙을 접하는게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그리고 조직내에 평등수칙이 존재한다면,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안도감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평 : 그럼 동지가 속한 노동당에서 평등수칙에 대해서 이야기해본 적도 있으신가요?
이 : 제가 노동당의 지역위원장, 도당위원장을 맡던 시절엔 회의 자료에 <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우리의 약속>과 <지구 살리기 생활 수칙> 두 가지를 넣어서 구성원이 돌아가며 읽는 운영 방식을 해봤는데, 그러고나면 뒤풀이 자리에서 평등수칙이 농담의 소재로 쓰이더라고요. 40~50대 중년남성 동지들이 “나이에 관계없어 동등한 당원의 지위를 가진다” 같은 것을요.
이렇게 농담으로 쓰인다는건 이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간에 곧 동지들 사이에서의 “평등수칙” 안의 가치를 의식하고 또 환기한다는거죠. 우리가 일상에서 자칫 놓칠 수 있는 문제의식들을 집단적 약속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 (비록 잘 지켜지지 못하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한 번 더 그렇게 확인되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갖는 의미가 커요.
평 : 지역에서 당원 교육을 진행하셨을때 구성원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 : 지역도당의 성비상(95% 이상이 4~50대 중년 남성, 70~80%가 금속노조 사업장) 그들이 사용하는 언행과 감수성을 봤을때, 청년 여성 동지가 모임에 오시면 “과연 이 모임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일례로 제가 충남도당 위원장이었던 시기에 텔레그램 N번방 이슈가 있었어요. 당시 성평등 교육을 들으러온 당원들 대부분이 40~50대 금속 사업장 노동자들이었는데 놀랍게도 이 이슈 자체를 모르더라고요. 성평등 교육의 핵심은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권력관계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하는거니까 아무래도 불편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죠.
평 : 조직에서 거부하는 반응을 접했을때, 어떻게 소통하고 계세요?
이 : (저도 마찬가지지만) 4~50대가 되면 보통 본인이 습득한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인식 체계를 절대화해요. 나쁘게 말하면 꼰대고요(웃음) 이런 삶의 태도는 사안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되게끔 만드니까, 우리가 함께 물꼬를 트고 성장하려면 공감이 먼저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 방어하거나 비토하는 상황으로 진행되면 안타깝죠.
청년 여성에 비해 그들이 상대적으로 갖고있는 특권에 대해 지적을 하면, “나는 설거지도 한다” 이런식으로 방어기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데, 민주노총 평등수칙에 “문제제기에 대한 태도”라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몇 번 평등교육을 한다고 이런 인식 차이가 극복될리는 만무하니, 지속해서 정당의 입장에서 당원을 대상으로 접촉과 변화의 순간들을 공급하는게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식이 더 퇴보하지는 않도록 말이에요.
평 : 그럼 동지들이 평등수칙을 접하기 전과 후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 아무래도 한 달에 29일 동안 다른 생각을 하며 살다가 하루 5분 정도 읽는것 만으로도 인식의 확장이 되는것 같진 않아요. 다만, 무리에서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된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여성을 향한 성적 대상화라던가 비하 표현들이 나오면 주변에서 “너 평등수칙도 안 읽었어?”라는 식으로 불평등에 대해 문제제기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는것 같아요.
평 : 청년 여성이 그 모임에 있을때와, “아저씨 동지”들만 있을때 평등에 대한 인식이 함께 작동하는지가 궁금했어요.
이 : 안 하는 것보단 효과가 있어요. 우리가 약간 좀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웃음)
평 : 이백윤 동지는 저희랑 평등위에서 활동하셔야 될것 같아요. 전국결집에 중년 남성인 회원 동지들이 많아서, 말씀하신 부분이 저희가 고민하는 지점들이거든요.
이 : 아무래도 저 같은 경우에는 대중정당의 대표로서 평등이란 개념이나 평등수칙이 가져오는 효과들을 확대·재생산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입장이죠. 예를 들면 평등수칙을 접했을때, 상대의 날것의 반응을 이야기하는게 필요하다고 봐요.
평 : 동지는 사회적 소수자인 동지들과의 소통할때 조심스러워진단 생각이 드시는 편인가요?
이 : 상대를 상처줄 수 있다는 감정이 앞서는거 같아요. 그런데 이게 건강한거 아닌가요? 더 나은 표현 방식을 찾아나가고, 사회가 개인에게 자연스레 주입한 인식 수준을 재고하는 거니까요.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평 : 당대표라는 직책으로서 평등에 대한 개념이나 인식 수준을 넓혀가는 방식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 : 저는 지금 활동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과거나 지금이나 투쟁력이 있겠지만, 인권 감수성이라고 생각해요. 리더십도 결국은 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이니까요. 감수성은 구성원들 안에서의 문제의식을 캐치하는 거라고 설명할 수 있어요. 사회나 집단 속에서의 불만들이 비록 소수에게 인식되는 것일지라도, 집단의 리더가 이를 인지하고 함께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을때 누군가는 이 공간을 ‘안전하다’, ‘내가 어려울때 함께 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겠죠.
‘뾰족한’ 리더십을 가지고 조직내에서 이에 대한 인식 수준을 넓혀 나가는 역할을 고민해요. 그와 동시에 어떻게하면 함께 문제의식을 확장하고 감수성을 성장시킬지 고민해겠죠. 누군가의 문제제기를 조직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곧 그 사람이 이곳에서 떠나지 않게끔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조직이 이를 얼마나 포용하고, 얼마나 직면하느냐의 문제에요. 사회주의 노동해방, 인간 해방이라고 하는게 결국은 우리에게 늘 당연시 되어왔던 구조에 대한 의문과 저항이기 때문에, 평등을 지향한다는 점 역시 유사한 지점이 있습니다.
평 : 기존의 노동조합 운동에 유입되는 세대들에 비하면 현재는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장애인권 운동을 경험한 활동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잖아요. 이런 문제의식들을 가진 분들이 나의 의제를 노동운동 안에서 구현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이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나요?
이 : 제가 운동을 시작하던 시기처럼 맑스 엥겔스를 학습하고 현장에 하방하던 세대와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당 차원에서는 당원내 성비 문제로 그런 문제의식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럼에도 소수자 운동과 관련된 행사나 집회가 있으면 대외적으로 참여하여 정당의 기조나 가치를 알리려고 해요.
조직내에서 상대적으로 ‘뾰족한 사람’이 있을때, 구성원들이 그 동지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저는 조직에 미치는 긍정적인 순기능도 있다고봐요. 청년 동지들을 통해 운동이 재생산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함께하는 동지들과 호흡할 수 있는 조직이 되려면 어떻게 나아가야할까?’를 고민하죠. 이 동지들의 입장에서 분명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텐데, 점차 나아질 수 있다는 동지적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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