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세 번째 이야기] 솔직히, 평등수칙 어려워요. '평등 뭘까?' 인터뷰 ① 엄길용 회원
-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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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평등수칙 어려워요. '평등 뭘까?' 인터뷰] ① 엄길용 회원
[편집자 주] 전국결집은 출범과 함께 평등수칙을 발표했다. 평등수칙은 민주노총, 전국결집 등을 비롯한 각 산별노조와 시민사회단체에서 만들었거나 만들어지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동체 구성원 간 차이에 따른 차별을 거부하며,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주요하게 담긴다.
그러나 여전히 평등수칙은 어렵게 여겨진다. 종종 차이를 밝히는 표현을 전부 금지하거나, 단죄(?) 하기 위한 명분이라는 오해도 받는다. 전국결집 평등위원회는 평등(수칙) 실천이 우리 삶 가까이에 있음을 알리고, 회원들께 평등(수칙)에 관해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취지의 사업으로, 연속 인터뷰를 시작했다.
전국결집 평등위원회는 평등(수칙)이 전국결집 회원의 삶에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지, 평등(수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물었고, 어떻게 실천되는지 질문했다. 명문화된 평등수칙과 관련한 우려도 듣고 토론했다. 동지적 믿음에 기반해, 평등수칙에 대해 회원 동지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는 것이 인터뷰의 목적이다.
첫 인터뷰의 주인공은 엄길용 전국결집 회원이다. 엄길용 동지는 공공운수노조 철도노조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으로 활동중이다.
평등위원회(이하 평) : 엄길용 동지, 반갑습니다. 전국결집 평등위원회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엄길용 회원(이하 엄) : 반갑습니다.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고, 전국결집 회원인 엄길용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고 어떤 이야기를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사실은 자신이 없더라고요. 제가 활동하는 조직의 요청이니 의무감을 갖고 앉아있습니다. 하하하.
평 : 첫 질문은 '평등'이라는 단어를 언제 처음 인식하거나 감각하게 됐는지에요. 어떤 의미에서든, 언제 처음 평등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셨나요?
엄 : 질문지 보면서 생각해봤는데, 어떻게 인식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게 저의 대답이 되겠더라고요. 그러면서 동시에 두 가지를 떠올렸습니다. '내가 뭐 굳이 불평등이나 위계가 없이 살면서 평등한 사람이었구나', '나는 평등했구나' 였고, 다른 하나는 '내가 늘 갑을관계 중 갑의 위치에 있어서 몰랐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죠. 남들에게 내가 불편하게 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못 느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생과 활동을 돌아봤을 때 딱히 불평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살아오진 않긴했는데, 아마 동지들이 봤을 때는 다를 수 있겠죠.
평 : 평등이나 평등수칙이라는 단어에 반감은 없어도, 낯설음은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이런 이름으로 만들어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비슷한 의미에서 평등수칙을 읽어보셨을 때 '아 이건 좀 모르겠다' 내지는 '이건 지켜지기 어렵겠다' 싶은 부분이 있었나요?
엄 : 전국결집 평등수칙과 다른 노조와 진보정당 수칙들을 살펴봤는데, 대부분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하지말자'는 부분이 있잖아요. 또 '개인 사생활'이라고 표현되는 나이, 집, 고향 등등에 대한 질문을 자제하자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는 하지만 심정적으로 쉽게 동의가 안되더라고요.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살아오면서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처음 관심을 가지고 공통점을 만들어 나가는 흔한 대화의 시작인데 말이죠. 이걸 해선 안된다 또는 지양하자고 하는 게 맞을까? 싶었습니다.
세대의 차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저 뿐 아니라 노동운동가이자 조직가로서는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이 들겁니다. 자기소개도 하고, 집이 어딘지 얘기하고, 가족관계나 나이를 물어보면서 일상적인 대화가 있어야 물꼬가 트이니까요. 외모에 관한 부분도, 저는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거든요. ‘너가 잘생겼네, 예쁘네' 같이 얘기하는 것이 평가적일지 몰라도 보이는 외면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편하게 관계를 터가는 과정이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것으로 많이 쓰이고, 전 이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거든요.
더해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외모에 대한 나쁜 얘기를 하지는 않잖아요. ‘넌 못생겼네, 추남추녀네’ 같은 것들요. 다만, 경험의 차이가 분명히 있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누가 지나가는데 ‘옷이 잘어울려요, 예뻐요’ 칭찬했는데 그게 사실은 되게 기분나빴다더라'하는 주변의 이야기도 들려오고요. 그런데 저는 평등수칙에서 지양해야 한다는 내용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대화하면서 지내왔어요.
평 : 비슷한 우려와 고민을, 다른 동지와도 나누시나요? 평등수칙에 관한, 현장 동지들의 의견은 어때요?
엄 : 기회가 있으면, 주변의 간부나 동지들과 평등수칙에 관해 많이 얘기해보려는 편이에요. 현장에서도 제가 방금 드린 말씀과 비슷한 반응이 많아요. 같이 활동하는 현장의 동지들도 답답함을 이야기하기도 하죠. 그것은 아마 우리 현장(철노도조)이 남성 중심 사업장이라서 더 그럴지도 몰라요. 사업장 내지는 세대의 차이가 분명 있을거라고 봅니다.
다만, 이를 굳이 명확한 문구로 만들어서 정해 놓는 것이 오히려 융통성을 줄일 수 있다고 봐요. 그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상황을 구축해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평등수칙에서 명문화해버리면 꼭 어떤 규정같이 돼버리잖아요. 항목으로 만들어 놓는 순간,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것, 규범이 되니까요. 더 유연한 대화가 오갈 수 있음에도, 조심스러워지는거지. 그리고 당연히 평등수칙에서 얘기하는 큰 틀에 당연히 동의합니다. 하하하.
평 :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어때요? 현장 뿐 아니고 동지의 삶을 비추어봤을 때, 지금의 평등수칙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과거보다는 현재에 더 많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지 궁금해요.
엄 : 엄청 바뀌었지요. 흡연만 놓고 보더라도 제가 20~30대 당시 여성이 흡연하는 것은 드물었어요. 길거리에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거의 없었고, 있었다면 아주 지탄의 대상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잖아요. 질문에 답이 맞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달라졌어요. 그런 변화로 평등수칙 같은 것들도 만들어진 것 일테고요.
단순히 담배 피우는 여성만 그런 것이 아니고 노조에서도 그렇죠. 예전 같았으면 누군가 제기하거나 따질 때, ‘좀 그냥 묻고 넘어가도 되지 않아? 그냥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데 굳이 그걸 꼭 표현하고 뭐 따져야 돼?' 이런 반응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안그래요. 문화와 분위기가 많이 바뀐거죠. 특히 회의 등 공적자리에서는 나이나 위계, 권위 때문에 얘기를 못하는 분위기는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근데 앞서서 제가 ‘적응이 안된다, 과하게 규정 짓는다’고 말씀드렸던 얘기들 있잖아요. 이건 좀 더 지나봐야 알 것 같아요.
평 : 동지께서 외모 얘기, 개인 사생활 질문을 자제하는 내용을 평등수칙에 명문화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 견해를 주셨지만, 그 평등수칙을 지키고 계시죠?
엄 : 제가 지금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인데 수칙을 어기면 큰일나겠죠. 우선 그게 있고, 저는 처음부터 좀 조심스러운 것이 있어요. 지금까지도 그런 것과 관련한 문제제기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적절한 분위기에 얘기를 해서 불편한 얘기가 잘 넘어갔을 수도 있겠네요.
평 : 동의가 안되고 조금은 불편한 내용의 평등수칙이지만, ‘어기지 않는다'는 실천 중인것으로 이해가 되네요. 다음 질문으로는 평등이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는지 여쭙습니다.
엄 : 아까 처음에 얘기했었잖아요. 없다니까요. 하하하
평 : 둘이 살짝 달라요. 아까는 평등이라는 걸 인지하거나 느낀 적이 있냐는 질문이었고, 지금은 ‘평등해야겠다', ‘평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를 묻는거에요.
엄 : 평등위원회 질문에서의 평등은 우리 활동하는 동지들 속에서 평등(수칙) 아니었나요? 당연히 살면서, 처음 활동 시작하면서 평등이라는 건 필요하다고 느꼈죠. 아니 온 천지에 다 불평등이 깔려있는데.
평 : 그 얘기입니다. 지금 하는 게. 평등사회 앞당기는 전노협 깃발의 그 평등.
엄 : 그러면 아까 질문을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저는 이게 우리 간부나 활동하는 이 공간 속에서 그런 것들을 일단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연히 온 세상이 불평등 투성인데. 이걸 언제 '처음' 느꼈냐고 물어보면 기억은 잘 안나요. 아니 하다못해 이게 어려서 자라면서도 형제 자매 간에도 불평등을 느끼잖아요.
우리가 얘기하는 성별에 대한 불평등 내지는 계급 간에 또 그 내에서 계층이나 여러 가지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것을 최소화하거나 바로잡기 위해서 노동운동을 하게 됐다고도 생각하거든요. 운동 시작할 때는 내가 개념 정립을 하고 뭔가 규정 지어서 한 건 아니지만, 그래서 당연히 ‘이게 잘못됐으니까 바꿔야 된다’라고 느꼈잖아요. 그런 문제의식 때문에 누구나 다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저 또한 마찬가지고... 그럼 그게 평등일 수 있겠네요.
다만 불평등 감각만 가지고 계급 의식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이 계급적 자각을 갖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 지금 바로 그냥 드는 생각이에요. 더 고민을 해봐야 될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래요.
평 : 마지막 질문입니다. 전국결집 평등위원회의 숙원이기도 한데요. 평등수칙이 이른바 ‘상층부'의 선언이 아니라 현장에서 기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엄 : 현장 조합원의 토론에 부치면 될 것 같아요. 이 수칙 지금은 어떻게 보면 활동가 간부가 중심이 돼서 토론하고 만든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걸 초안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장 조합원들에게 가져가서 얘기되게하고, 거기서 좀 정리되는 게 어떻게 보면 정답일 수 있죠. 현장의 눈높이 내지는 정서에 맞춰서 현장에 다가가는 가정이죠. 아무래도 간부 활동가들은 아무래도 훈련돼 있기도 하고 생각이 좀 다를 수 있거든요. 그게 지금 지름길인 것 같아요. 이것도 지금 바로 드는 생각이었는데, 뭐 아니면 다음에 또 따로 얘기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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