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 번째 이야기] 노동자 아닌 ‘노동자’에게 임금노동이란? 체제 모순 끝판왕, 보험업의 현실
-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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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아닌 ‘노동자’에게 임금노동이란? 체제 모순 끝판왕, 보험업의 현실
- [인터뷰] 보험설계사지부 오세중 지부장
[편집자 주] : ‘노동자와 사용자의 정의’를 확대하여 진짜 사장에 맞서 제대로 싸우기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이 펼쳐지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대표적 직종인 보험설계사는 전국에 약 40만 명이 있다. 보험설계사는 ‘노동자’임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해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촉 계약서’, ‘프리랜서 계약서’ 등을 작성한다. 보험사는 필요할 땐 설계사의 업무부터 근태까지 통제하면서 정작 회사가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거나 법 위반사항이 발생하면 ‘설계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보험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고용노동부 역시 같은 이유로 뒷짐을 지고 있다.
지난 7월 19일 전국결집은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오세중 지부장을 남영동에서 만났다. 오세중 지부장은 보편적 권리로서의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보험설계사 현장의 열악한 현실을 짚어주었다. 또한 보험설계사 노동조합이 어떻게 출발했으며 현장활동과 투쟁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부당함은 무엇이 있는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보험설계사 노동조합이 어떻게 출발했는지 과정에 대해 소개해 달라.
“시초는 2000년에 만들어진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이었습니다. 저는 2007년부터 보험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보험업계에 부당한 것이 너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노동조합을 만들면 현장에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협회’ 형태로 일단 시작을 했습니다. 2013년 초, 20여명이 모여 ‘대한보험인협회’를 설립했습니다. 협회로 2017년까지 4년 동안 활동을 하며 보험업법 개정 등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해당 법에는 ‘보험설계사에 대한 불공정행위 금지 규정’이 있습니다. 보험설계사에 대한 각종 부당한 행위 등을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인데 당시에는 처벌 규정이 없었습니다. 협회의 지속적인 활동과 요구로 법 조항에 처벌 규정을 넣을 수 있게 되었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정치권에 의탁하여 법제도 개선 요구 만으로 한정되는 활동에 많은 한계를 느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딱 1~2년만 열심히 하면 보험설계사를 대거 조직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4년을 활동했는데도 전체 협회 회원이 200명을 넘지 못했습니다. 모두 우리 처우가 부당하다는 하소연을 하면서도 ‘이런 활동하다가 괜히 나만 불이익당하는 건 아닌가’, ‘먹고 살기 바쁜데 협회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현장은 상당히 위축되어 회원 확대사업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2017년 박근혜 퇴진 정국을 거치며 정세가 열렸습니다. 저는 그간 협회 활동의 성과를 모아 노동조합으로 조직전환을 시도했습니다. 노동조합으로의 조직전환과 동시에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당시 사무금융연맹)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대부분 그렇듯이 설립 당시에는 곧바로 필증을 교부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020년 말까지 법외노조로 활동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마침내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설립 필증을 쟁취하면서 보험설계사의 명실상부한 노동조합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 보험설계사 현장에서 일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부당하고 힘들었는지?
“요즘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장에서는 ‘야, 너 내일부터 일하지마’라는 말 한마디로 부당하게 해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부조리와 갑질도 많습니다. 보험업계의 기본은 보험설계사가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고객이 납부하는 보험료 일부를 보험사로부터 ‘수수료’ 형태로 지급 받는 구조입니다. 수수료가 우리의 임금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수수료는 몇 년에 걸쳐 분할 지급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제가 만약 이번 달에 그만두게 되면, 몇 년에 걸쳐 받아야 할 앞으로의 수수료를 전혀 받을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더 부당한 점은 보험계약이 일정 기간 유지되지 않을 경우, 이게 설계사의 귀책 사유가 아님에도 받았던 수수료를 환수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받아야 할 수수료는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 내 잘못이 아닌 이유로 수수료를 토해내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이렇게 부당하고 모순덩어리인 업계 부조리가 여전한 점이 가장 힘듭니다.
그리고 고객이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 청구를 했을 경우, 특정 설계사가 판매한 보험상품과 관련한 보험금 지급 청구가 많다는 이유 만으로 설계사 개인에게 불이익이 돌아갑니다. 보험급 지급으로 인한 회사의 손해를 설계사에게 그대로 떠넘기는 구조인 겁니다. 회사가 보험설계사를 잠재적 보험사기 연루자로 간주한다는 인식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불합리한 제도가 있나 싶을 정도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현장에서 일하고 노동조합 활동까지 하게 되면서 감동적이었던 경험은?
“저는 사실 크게 감동을 받는 그런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활동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과 성취감은 분명 있습니다. 작은 현안 문제여도 현장의 사안을 하나 하나 해결하면서 조합원 동지들이 고마움을 표현해주실 때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기간 활동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학습 등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원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주어진 일에 충실한 활동을 하면서도 늘 ‘나 또한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노동자의 자부심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1년 3월 3일 한화생명 본사 앞 천막(임시사무실) 농성 투쟁을 시작한 모습. 출처 : 보험설계사지부]
-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의 현재 상황과 주요 투쟁에 대해 설명해 달라.
“2020년 12월 설립필증 쟁취 직후, 공교롭게도 2021년 1월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들의 투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누적된 분노가 터져 자발적으로 일어난 한화생명 보험설계사 동지들과 만나 노동조합 설립 상담을 진행했었고, 그렇게 불과 한두 달 사이에 한화생명지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사실 초창기에는 조직확대에 있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그러니까요. 그런데 설립필증 쟁취하고 합법적인 노조로 걸음마를 시작한 국면에서, 마침 한화생명 보험설계사 동지들이 투쟁에 나서면서 조합원이 순식간에 3,000명까지 늘어나게 된 겁니다. 코로나 정국을 투쟁으로 돌파하며 노조탄압을 이겨낸 우리 조합원 동지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게 임단협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측은 처음에는 정규직 임단협 기간을 핑계대면서, ‘정규직 임단협이 끝날 때까지는 어떤 것도 들어줄 수 없다’고 우겼습니다. 노조법 상 설립필증을 이미 쟁취한 상황이었기에 사측의 지연 전략이 일정 부분 한계에 봉착했고, 결국 507일 동안 한화생명 본사 앞에 임시 천막사무실을 차리고 농성을 한 끝에 ‘기초협약’이라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임단협은 체결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과제로 남았습니다.”
[2022년 7월 27일 한화생명 본사 앞, 기초협약 체결 보고 결의대회. 512일 만에 천막농성 해제. 출처 사무금융노조]
-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노조법이 개정되면 보험설계사 현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험설계사 입장에서 특히 주요하게 짚어야할 지점은 무엇이 있는지?
“보험설계사의 입장에서는 사실 사용자 정의 확대 문제가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편입니다. 노동조합이 본격화된 후, 업계에서는 일종의 자회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보험영업 조직을 별도로 분리/분할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설립 직후, 한화생명은 ‘한화생명금융서비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약 2만 명을 전직 조치했습니다. 작년에 노조가 설립된 KB라이프생명도 설계사 영업조직을 따로 떼어내서 ‘KB라이프파트너스’를 만들었습니다. 보험대리점을 우후죽순 만들어 비용절감 등 일종의 구조조정과 설계사노조 단결력 약화 효과를 노린 것이죠. 원청 보험사는 이렇게 사용자성을 부정할 여지를 계속 확대해나가고 있는 겁니다. 챙길 건 다 챙겨 가고, 책임과 의무는 회피하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이런 행태는 제조업과 거의 유사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진짜 사장과 제대로 싸우려면 노조법 상 사용자 정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 향후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의 투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우선적으로 현재 설립된 여러 지회에서 임단협을 체결해내는 모범 사례를 만들어, 이를 업계 전반으로 확산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바탕으로 15개 생명보험사, 15개 손해보험사, 수천 개의 보험대리점에 맞서 40만 보험설계사의 제반 노동조건을 상향시키는 집단적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아직 노동조합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습니다. 모든 보험사에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우고 싶습니다.
내용적으로는 근로기준법을 중심으로 보험설계사 권리 보장을 위한 제반 법 확대 적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험설계사에게 근로기준법은 커녕 ‘산업안전보건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적용되지 않는 법이 정말 많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 법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보험설계사가 보험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확장해내고 싶습니다. 업계의 특성 상 우리가 보험상품을 판매하면 그것이 회사를 먹여살리는 구조입니다. 보험설계사들은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저 관리자들이 월급받는 거야! 우리가 뼈빠지게 일해서 회사가 돈 버는 거야!’라는 생각을 합니다. 보험사가 누구 때문에 막대한 이윤을 누릴 수 있는지 보험설계사들은 직관적으로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를 집단의 힘으로, 노동조합의 전망과 투쟁으로 엮어내는 것이 모두의 과제라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저는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로 표상되는 이른바 ‘비정형노동’의 투쟁이 갈때까지 간 자본주의 시대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을 고민하는 입장에서도 더 많은 시도와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이 시대에 본질적으로 ‘임금노동이란 무엇인가’를 전면에 제기할 수 있는 투쟁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보험상품 하나를 판매했을 때 받게 되는 수수료(임금)가 10여년 전에 비해 오히려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먹기 살기 위해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 시대와 다르게 좀 더 처절한 형태의 ‘자발적 착취’가 발생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운동은 체제 모순의 말단을 건드리는 이 문제를 더 직접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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